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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가볼만한 곳 세계유산 조선왕릉 선릉과 정릉

여행/국내

by 마켓김씨 2018. 9. 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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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조선왕릉(선릉, 정릉)은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 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제 되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40기)으로 우리의 전통 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 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문화 유산이다.


등재일 : 2009년 6월 30일


오늘은 점심시간에 사무실 근처에 있는 선릉과 정릉에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백일장이나 사생대회때 많이 오곤 했는데 다 크고 나서는 가까이 있지만 거의 가보질 않았었던거 같습니다. 


오랫만에 운동삼아 선릉과 정릉에 다녀왔습니다.



선릉과 정릉은 입장료 내고 입장해야 해서 입구쪽에 매표소가 있습니다.



입장료는 1,000원이고 1개월 부터 1년까지 정기권도 있습니다.


강남구민은 50% 할인되어서 500원에 입장 가능했습니다.



안내도 보면 생각보다 큽니다. 우측에 중종의 능인 정릉이 있고 좌측엔 선릉이 있는데 위쪽에 정현왕후릉이고 아래쪽이 성종대왕릉 입니다. 성종대왕릉과 정현왕후를을 합쳐서 선릉이라고 합니다.



입구에서 입장권 내고 입장하면 됩니다.



정릉부터 둘러 보기로 했습니다. 정릉 옆길입니다.



정릉과 정자각이 보입니다.



길 옆에 꿩 새끼 2마리가 보입니다. 여긴 신기하게 비둘기 보단 꿩이랑 까치가 많은듯 합니다.



저 멀리 정릉이 보입니다. 사진상으로는 멀어 보이지만 실제는 그리 멀진 않습니다.


골프장 같아 보이긴 하네요



앞에 있는 문은 홍살문 입니다.


홍살문 :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 2개를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 놓았다. 홍문 또는 홍전문 이라고도 한다.



홍살문을 통과하면 향로와 어로가 있습니다. 걸어갈때는 어로로 다니면 됩니다.


왼쪽의 향로는 제향을 지낼때, 혼령을 위한 향이 지나가는 길입니다.


오른쪽은 어로로 제향을 지내러 온 임금이 걷는 길입니다.



잔디 위에 있는 새들이 전부 까치 입니다. 유난히 까치가 많습니다.



정자각 : 왕릉 제례때 제향을 올리는 정丁자 모양으로 지은 건물



정자각에 올라가는 계단은 신계와 어계 두가지가 있습니다. 우측 어계를 이용해서 올라가면 됩니다.



여기다 제사상을 차리나 봅니다.





정릉


조선 제11대 중종의 능


정릉은 중종의 단릉이다. 중종(1488~1544, 재위 1506~1544)은 제9대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태어나 1494년 진성대군에 봉해졌다. 이후 1506년 박원종등이 연산군을 폐위하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동안 연산군대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아 새로운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조광조 등 사림을 등용하여 현량과를 실시하고,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여 새로운 향촌질서를 확립하였다. 인쇄술의 발달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였고, 비변사를 설치하여 국방체제를 정비하였다. 재위 39년에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중종의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 등을 배치하였다. 원래 정릉은 중종이 세상을 떠난 후 1545년 두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서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고 정릉이라 하였다가. 1562년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능을 옮겼다. 문정왕후는 중종의 능침이 풍수상 좋지 않아 능을 옮겨야 한다고 했으나, 사실상 문정왕후 본인이 중종과 묻히기를 원하여 능을 옮긴 것이다. 그러나 옮긴 정릉이 홍수 피해가 잦자, 문정왕후의 능은 현재의 태릉에 조성하였다.











비각 : 비석이나 신도비를 보호하는 건물



비각에 쓰여있는 문구입니다. 뒷편은 볼 수가 없습니다.



이제 선릉이로 이동합니다. 길이 여러 갈래로 있는데 왼쪽으로 가면 큰길로 빨리 갈 수 있고 직진하면 산길로 산책하면서 갈 수 있습니다.




곳곳에 벤치가 있어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오솔길도 있어 동네 뒷산 등산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정현왕후 능 입니다. 능에 오면 무덤이 참 크다 생각했었는데



저 큰게 무덤이 아니라 위에 따로 있었네요



주변에 문무석인과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등이 배치 되어 있습니다.



난간석주가 발견된 상태 그대로 보존 되어있습니다.









선릉


조선 제9대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의 형태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 보았을 때 왼쪽(서쪽)언덕이 성종, 오른쪽(동쪽)언덕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은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469년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 정희왕후의 명으로 13세에 경복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동안 「경국대전」과 「국조오례의」를 반포해 조선의 법과 예를 완성하고, 조세제도를 정비하여 관수관급제를 실시해 백성의 부담을 줄였다. 홍문관을 설치하고 「동국여지승람」등 많은 서적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사림세력을 등용하여 훈구와 사림간의 세력 균형을 이루었다. 재위 25년에 38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현왕후 윤씨(1462~1530)는 영원 부원군 윤호의 딸로 1473년에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고, 1480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후 자순왕대비가 되었으며, 1506년에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폐위하고 아들 진성대군의 즉위를 허락하였다.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성종의 능침은 「국조오례의」의 예를 따라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 등을 배치하였다. 정현왕후의 능침은 병풍석만 생략하였을뿐 성종의 능침과 같은 형태이다.



옆길로 가면 능침쪽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능침입니다. 정현왕후릉에 비해 위치도 더 좋고 잘 꾸면 놓은거 같습니다.




뒤로 빌딩숲도 보입니다.






이곳에도 정자각이 있습니다.



정릉과 같습니다.



여긴 수복방입니다.


수복방은 능지기들이 능역을 관리하기 위하여 정자각 동쪽에 지은 집입니다.



이곳은 수라간입니다.


매년 제향을 지낼 때, 음식을 덥히는 곳입니다.



역시 향로와 어로가 있는데 왼쪽 어로로 다녀야 합니다.



역사 문화관에는 선릉과 정릉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있습니다.



조선왕릉 분포도 입니다. 한번 다 둘러볼까 생각도 드네요







500년된 보호수 입니다.



높이가 24미터네요



엄청 두껍습니다.







여기는 재실 입니다.



재실


재실은 제례에 앞서 제관들이 미리 도착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다. 평소에는 참봉등 관리가 이곳에 상주하면서 능역을 돌보았다. 주요 시설로 재실외에 향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례업무를 주관하는 전사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행랑채 등이 있었으며 단청은 하지 않았다.




대문을 통해서 들어가 봤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쉬고 싶네요



사진이 뿌옇게 찍혔네요



내부 모습입니다.



이렇게 다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어릴때는 그냥 와서 뛰어놀다가 가곤 했는데 역사나 의미등을 알아보니 새롭게 느껴집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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